"사과 한마디도 증거가 되나"…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령 전쟁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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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5월 시행을 앞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의 세부 기준을 정할 하위법령 논의가 시작되면서 의료계와 환자단체 간 치열한 공방이 예고되고 있다. 법률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실제 제도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쟁점 대부분이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위임돼 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11일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의료분쟁조정법 하위법령 협의체' 첫 회의를 개최했다. 협의체는 의료계, 환자·소비자단체, 법조계, 보험업계, 정부기관 등이 참여하며 오는 11월까지 운영된다. 논의 대상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범위, 중대한 과실 기준, 의료사고 설명의무, 책임보험 보장기준,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운영방안 등이다.

이번 개정안은 지난 4월 국회를 통과한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따른 후속 조치다. 개정법은 고위험 필수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의료진의 형사책임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료계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필수의료 형사리스크 완화'가 제도화된 첫 사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의료계는 법 통과 이후에도 안심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대한의사협회는 특히 의료사고 발생 후 의료진이 환자와 보호자에게 제공하는 설명이나 사과가 향후 민·형사 소송에서 불리한 증거로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의협은 하위법령에 "설명 과정에서 이뤄진 사과·위로·유감 표현은 증거능력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명확히 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개정법은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진이 환자 및 보호자에게 사고 경위 등을 설명하도록 의무화했다. 입법 과정에서는 의료진이 법적 책임을 우려해 설명과 사과를 회피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설명 과정에서의 위로와 공감 표현을 법정 증거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취지가 논의돼 왔다.

의료계가 또 다른 핵심 쟁점으로 꼽는 것은 '중대한 과실' 기준이다.

개정법은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에만 형사특례를 인정한다. 하지만 의료현장에서는 중대한 과실의 정의가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외과계와 소아청소년과계 학회들은 응급상황과 환자 개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기준이 적용될 경우 오히려 방어진료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의 구성 역시 논란거리다. 위원회는 의료사고의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사실상 핵심 기구가 될 전망이다. 의료계는 임상현장을 충분히 이해하는 전문가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환자단체는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환자단체들의 시선은 더욱 비판적이다.

일부 환자·소비자단체는 형사특례 제도 자체가 의료진에게 과도한 면책 특권을 부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손해배상과 형사책임 문제가 연계될 경우 피해자와 유족의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며 하위법령 단계에서 보완장치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결국 이번 협의체 논의는 단순한 시행령 정비 작업이 아니라 의료사고 처리체계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과정으로 평가된다.

의료계는 "의료진이 설명하고 사과할 수 있는 환경"을 강조하고 있고, 환자단체는 "책임 완화보다 피해자 권리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진의 진료환경 개선과 환자 보호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게 됐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은 내년 5월 시행된다. 향후 5개월간 이어질 하위법령 논의 결과에 따라 의료사고 형사특례 제도의 실효성과 사회적 수용성이 결정될 전망이다. 의료계와 환자단체 모두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말하는 이유다.



작성#건강보험저널 #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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