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의날 정부의 자화자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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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뷰티 세계 2위라는데…‘100억 달러 흑자’ 뒤에 가려진 숙제
화장품 무역수지 흑자 101억 달러, 수출 세계 2위…정부는 “세계 1위” 선언
규제 세계화·글로벌 브랜드 육성 강조했지만 구체적 실행전략은 여전히 과제
“잘 팔릴 때가 위기 대비할 때”…K-뷰티의 다음 성적표는 ‘수출액’ 아닌 지속성


K-뷰티가 사상 처음 화장품 수출 세계 2위에 올랐다. 지난해 화장품 무역수지 흑자는 101억 달러로 100억 달러를 넘어섰다. 정부는 이를 두고 K-뷰티가 ‘핵심 산업’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하며 이제 세계 1위를 향한 도약을 선언했다.
그러나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출액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 화장품 산업의 체질이 강해졌다고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중소 브랜드들이 해외 규제와 유통망의 벽을 넘어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은 아직 뚜렷하지 않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7일 서울 중구 더 플라자 호텔에서 ‘확신의 K-뷰티, 꽃을 피우다’를 주제로 ‘2026년 화장품의 날’ 기념식을 개최한다.
법정기념일 지정 이후 두 번째 행사다. 정부·국회·산업계·학계 관계자 약 300명이 참석해 K-뷰티의 성과를 공유하고 세계 1위를 향한 도약을 다짐한다.
문제는 ‘세계 2위’라는 타이틀 다음이다.

■ 수출 2위인데…세계 시장을 움직이는 브랜드는 얼마나 있나
한국 화장품이 세계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많이 만들어 수출한다’는 것과 ‘한국 브랜드가 세계 시장을 지배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K-뷰티의 수출 확대가 다수 중소·중견기업의 해외 진출과 온라인 유통 확대에 힘입은 것이라면, 앞으로의 과제는 더욱 분명하다. 일시적인 유행을 타는 제품을 넘어 소비자가 장기간 선택하는 글로벌 브랜드를 얼마나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정부도 이 문제를 인식한 듯하다.
#한성숙 국무총리는 영상축사에서 화장품 인·허가 기준을 세계화해 규제로 인해 수출이 막히는 일이 없도록 하고 더 많은 기업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업계가 기다리는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어느 국가의 어떤 규제를 어떻게 통합·간소화할 것인지, 중소기업의 해외 인증 비용과 현지 법규 대응 부담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 글로벌 유통망과 브랜드 육성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정책 로드맵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 ‘규제 완화’만 외쳐서는 세계 1위 못 간다
화장품 산업에서 규제는 양날의 칼이다.
안전성과 품질을 담보하기 위한 규제는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하는 기반이지만, 국가마다 다른 인허가 절차와 기준은 수출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
따라서 정부가 말하는 ‘규제의 세계화’가 단순히 국내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흘러서는 곤란하다. 한국이 안전성과 품질 측면에서 국제적인 신뢰를 확보하면서 동시에 해외 규제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대기업보다 해외 법무·규제 대응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실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K-뷰티의 경쟁력이 소수 대기업에 집중된다면 수출 1위라는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산업 전체의 체질 개선으로 이어졌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 정부포상 10점 신설…‘축하’보다 중요한 건 투자
올해 화장품의 날에는 정부포상도 새롭게 마련됐다. 훈장 1점과 포장 2점, 대통령표창 3점, 국무총리표창 4점 등 모두 10점이다.
산업 규모가 커진 만큼 종사자의 공로를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산업이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했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포상의 확대보다 산업 생태계에 대한 실질적인 투자다.
원료·소재 기술, 안전성 평가, 피부과학, 제형 기술, 생산 자동화, 친환경 소재 등 화장품 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K-뷰티의 성장세는 쉽게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 기업들이 빠르게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산’이라는 프리미엄만으로 세계 시장을 계속 선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서울광장 행사·할인 이벤트…산업의 본질은 따로 있다
식약처는 이날 서울광장에 K-뷰티 체험관을 열고 기업관과 정책관을 운영한다. K-뷰티 제품 전시관과 메이크업쇼, 퀴즈·스탬프 이벤트도 마련한다.
22개 기업은 화장품의 날 전후로 할인 판매와 쿠폰, 기획전, SNS 이벤트 등을 진행한다.
소비자에게 K-뷰티를 알리는 데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하루짜리 행사나 할인쿠폰이 아니다.
해외 소비자가 한국 제품을 한 번 사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찾게 만드는 브랜드 경쟁력, 그리고 기업이 시장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과 자본, 유통망이 핵심이다.

■ ‘꽃을 피우다’ 다음에는 무엇이 남나
정부는 올해 화장품의 날 슬로건으로 ‘확신의 K-뷰티, 꽃을 피우다’를 내걸었다.
지난해 101억 달러라는 사상 최대 무역수지 흑자는 분명 한국 화장품 산업이 이룬 값진 성과다. 세계 2위 수출국이라는 기록 역시 쉽게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아니다.
하지만 산업은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더 냉정하게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
수출이 특정 국가와 품목에 편중돼 있지는 않은지, 중소기업이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고 있는지, 한국을 대표할 차세대 브랜드가 계속 나오고 있는지, 해외 규제 변화에 국내 기업들이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 세계 2위는 목표가 아니라 경고등일 수도 있다.
지금의 성장세를 구조적인 경쟁력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K-뷰티의 ‘세계 1위’ 구호 역시 한때의 유행처럼 끝날 수 있다.
결국 화장품의 날이 확인해야 할 것은 지난해의 수출액이 아니다. K-뷰티가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세계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가다.
101억 달러의 흑자 뒤에 숨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이야말로 정부와 업계가 지금부터 풀어야 할 진짜 과제다.
[건강보험저널/박종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