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약 타겟발굴·검증 사업에서 다시 보는 10년의 정책 설계와 환류
가톨릭대학교 의생명과학과 교수 여재천, jcyeoid@gmail.com
새로운 사업을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일
R&D 정책을 평가할 때 우리는 예산, 과제 수, 논문과 특허를 먼저 본다. 그러나 신약개발처럼 시간이 긴 분야에서는 다른 질문이 더 중요하다. 하나의 사업이 끝난 뒤 그 경험이 다음 사업의 설계에 실제로 반영되었는가. 연구성과가 다음 단계 파이프라인으로 넘어가도록 정책이 스스로 진화했는가.
약 10년 전 필자는 신약개발의 가장 앞단인 타겟발굴·검증 사업을 기획했다. 직접 RFP 초안을 만들고 과기정통부 담당 사무관을 통해 건의했으며, 실무기획을 거쳐 사업을 출범시켰다. 이후 5년간 총괄책임을 맡은 뒤 스스로 물러나 대구첨단의료복합단지에서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누가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작은 사업이 생태계에서 무엇을 촉발했고 그 경험이 이후 정책에 얼마나 축적됐는가이다.
■ 기업은 왜 임상자금을 말했을까
당시 기업들 가운데는 “왜 제품화·임상자금을 늘려 달라고 하지 않고 기초연구인 타겟발굴·검증부터 시작하느냐”는 푸념도 있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정책은 기업이 아직 발견하지 못한 미래의 파이프라인까지 바라봐야 한다. 타겟이 검증되지 않으면 후보물질도 없고 후보물질이 없으면 임상도 없다. 반대로 타겟발굴·검증만 하고 다음 단계로 연결하지 못하면 연구성과가 산업성과로 전환되지 않는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신약개발을 타겟발굴·검증, 후보물질, 비임상·임상, 상용화의 연속된 단계로 설명하면서 기존 사업과 국가신약개발사업의 연계·활용 방안 구체화 필요성을 지적했다. 결국 앞단 연구냐 뒷단 임상이냐의 선택이 아니라 단계 사이의 연결 문제였다.
■ 작은 사업의 의미는 규모가 아니라 트리거에 있다
당시 사업은 큰 예산의 사업이 아니었다. 필자는 10억원도 채 되지 않는 규모에서 시작해 성과를 확인하면서 단계적으로 확대되기를 기대했고 이를 건의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만큼 규모가 커지지 못했다는 것이 첫 번째 아쉬움이다.
그렇다고 작은 사업의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필자의 현장 경험으로는 이 사업을 계기로 타겟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라는 개념이 신약개발 정책에서 보다 분명해졌고, 일부 파이프라인 확장과 학·연 연구성과의 기업 연구개발 접목에도 자극을 주었다. 다만 이 효과의 정확한 규모와 인과관계는 공개자료만으로 정량화하기 어렵다.
공개자료에는 과기부 타겟발굴·검증 예산이 2017년 65.38억원, 2018년 72.33억원, 2019년 48.93억원, 2020년 15.41억원, 2021년 30.08억원으로 제시된다. 일정한 방향으로 계속 확대된 것은 아니지만 정책영역으로 유지됐음은 확인된다.
■ 10년이 지나도 같은 질문
2026년에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첨단신약 타겟발굴·검증 및 기반기술개발 사업’을 신규 공모하고 있다. 2026년 공고상 당해 지원 규모는 36.75억원, 선정 과제는 18개 내외다. 타겟발굴·검증의 정책적 필요성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국가신약개발사업은 2021~2030년 총사업비 2조1758억원 규모로 후보물질 도출부터 임상 2상까지 지원한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앞단 사업의 성과가 다음 단계에서 어떻게 추적되는가이다. 어떤 타겟이 후보물질로 갔는가. 기업으로 이전됐는가. 후속 정부과제로 이어졌는가. 중단 이유는 과학적 실패인가, 자금인가, 특허·사업성인가. 실패 데이터가 다음 RFP에 반영됐는가.
■ 패션에 민감한 R&D를 넘어
새로운 기술에 민감한 것은 필요하다. AI, RNA, 유전자편집, 자율실험실 등은 빠르게 포착해야 한다. 실제 2026년 AI-네이티브 첨단바이오 자율실험실 사업도 신규 타겟발굴·검증과 AI·로보틱스 기반 자동화·고속화를 지원한다.
문제는 새로운 기술 자체가 아니라 새로운 사업이 기존 사업에서 얻은 교훈을 대체하는 경우다. 기술의 유행에는 민감하지만 사업의 학습에는 둔감하다면 ‘패션에 민감한 단발성 R&D’가 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신약 R&D 정책 계보관리’다. 타겟을 중심으로 후보물질, 비임상, 임상, 기술이전까지 추적하고 실패 원인까지 기록해 다음 RFP에 반영하는 것이다. 작은 사업에서 검증된 타겟이 다음 단계 사업과 민간투자로 연결된다면 작은 예산도 국가 R&D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
■ 정책은 사다리가 아니라 순환계가 되어야 한다
신약개발을 단계별 사다리로만 보는 것도 부족하다. 임상에서 얻은 데이터가 다시 타겟의 유효성을 판단하고 실패한 후보물질의 정보가 새로운 타겟과 모달리티 선택에 활용되는 순환구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