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원작을 고치는 일, 정책을 바꾸는 일;여재천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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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고치는 일, 정책을 바꾸는 일
― 『새의 선물』 개정판에서 한국의 신약개발 정책을 생각하다
가톨릭대학교 의생명과학과 교수 여재천, jcyeoid@gmail.com



문학작품은 시대와 함께 읽힌다.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표현이 오늘날에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고, 당대의 관습으로 이해했던 장면이 지금의 성평등과 윤리적 기준에서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렇다면 시대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과거의 작품도 그에 맞게 고쳐야 하는가. 은희경의 『새의 선물』 개정판을 둘러싼 생각은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우리가 나눈 대화의 핵심은 개정의 찬반을 단순하게 결정하는 데 있지 않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작품을 새롭게 읽는 일과, 시대의 기준에 맞추어 작품 자체를 고치는 일은 서로 다르다는 점이었다.



작품을 읽는 사회의 감수성은 달라질 수 있다. 과거의 문장과 장면을 오늘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독자의 해석이 달라졌다는 사실이 원작을 수정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가 작품을 고칠 권리가 있는 것처럼, 독자에게는 고쳐지지 않은 원작을 만날 권리도 있다.



물론 작가의 개정 의도를 존중해야 한다. 작가 스스로 표현을 다듬고, 오류를 바로잡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창작의 일부다. 문제는 개정의 목적과 범위다. 문학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정인지, 시대의 윤리적 기준에 맞추기 위한 수정인지, 아니면 논란을 피하기 위한 수정인지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진다.



특히 오늘의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할 때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해야 한다. 작품은 특정한 시대와 사회 속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언어와 관습, 인물의 생각과 행동은 오늘의 기준으로 보면 낯설거나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낯섦이 작품을 통해 과거를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단서일 수도 있다.



불편한 표현을 지우면 불편함은 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그 표현이 존재했던 시대의 흔적까지 함께 사라질 수 있다. 원작을 오늘의 기준에 맞추는 일이 언제나 작품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작품이 품고 있던 질문을 제거하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기회까지 줄일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문학의 문제는 정책의 문제와 만난다.



한국 신약개발 정책 역시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끊임없이 수정되어 왔다. 정부는 제약바이오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연구개발 지원을 확대하고, 혁신형 제약기업 인증제도를 운영해 왔다. 국가신약개발사업과 정책펀드,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등 지원수단도 다양해졌다.



과거의 정책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산업환경이 달라졌다면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문제는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유지할 것인가이다.



2012년에 만들어진 정책의 기본 틀을 2026년에도 유지하면서 지원기준과 사업만 덧붙이는 방식으로 충분한가. 정책의 이름과 지원금액을 바꾸는 것만으로 산업의 구조적 병목을 해결할 수 있는가.



문학작품의 개정에서 원작의 맥락을 살펴야 하듯, 정책의 개정에서도 기존 정책이 만들어진 배경과 달성하려 했던 목적을 먼저 살펴야 한다. 과거의 정책을 무조건 폐기하는 것도, 기존 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필요한 것은 정책의 목적과 작동 원리를 다시 검토하는 일이다.



한국 신약개발의 현실은 분명히 달라졌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많은 과제를 지원했는가에 머물지 않는다. 지원한 파이프라인이 임상개발의 다음 단계로 진전했는가, 글로벌 임상과 기술이전으로 연결됐는가, 허가와 시장진입을 거쳐 실제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선택지를 제공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정부가 지원사업을 늘리는 것과 신약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지원사업이 여러 단계에 걸쳐 존재한다고 해서 전주기 지원이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전임상 연구가 임상투자로 이어지고, 임상 데이터가 민간자본과 글로벌 파트너십을 끌어내며, 허가와 보험등재가 시장진입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정책의 성과는 사업의 개수가 아니라 이러한 연결이 실제로 작동하는지에 달려 있다.



일본의 제약 스타트업 지원에서 민간 전문 벤처캐피털과 정부의 위험분담을 연결하는 방식, 중국이 혁신신약의 연구개발뿐 아니라 규제·가격·보험·시장진입을 함께 다루려는 움직임에서 참고할 점도 여기에 있다. 두 나라의 제도를 그대로 가져오자는 것이 아니다. 정부 지원을 산업의 다른 요소들과 연결하는 정책설계의 원리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신약개발에서 실패는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실패에 대한 책임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임상적 실패와 연구비의 부정 사용, 허위성과 보고, 부실한 연구관리는 구분해야 한다.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고 다음 의사결정에 반영하는 일과, 잘못에 책임을 묻는 일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실패를 줄이겠다는 명분으로 도전 자체를 위축시키지 않는 것이다. 실패한 과제를 무조건 처벌하는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안전해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신약개발의 본질과 충돌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실패를 방치하는 정책이 아니라 실패를 관리하고, 가치가 소진된 과제는 조기에 중단하며, 확보된 지식과 자원을 다음 가능성으로 연결하는 정책이다.



문학에서 원작을 고치는 일이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작품의 고유한 맥락을 지울 수도 있듯이, 정책의 수정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 정책에 새로운 사업을 추가하는 것이 언제나 발전은 아니다. 때로는 지원의 기준과 자원배분의 원리, 성과를 판단하는 방식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



『새의 선물』 개정판을 생각하며 우리가 던졌던 질문은 결국 하나로 모인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사실만으로 과거의 것을 고치는 것이 정당화되는가.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왜 고치는지, 그리고 그 수정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지를 따져보는 일이다.



한국 신약개발 정책도 이제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과거의 정책을 무조건 지키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새로운 시대라는 이유만으로 기존 정책 위에 또 하나의 지원사업을 얹는 데 그쳐서도 안 된다.



낡은 지도에 새로운 도로를 계속 그려 넣으면 지도는 복잡해질 뿐이다. 목적지가 달라졌다면 길을 더 그리는 데 앞서 지도를 다시 살펴야 한다.



문학은 원작을 통해 시대를 되돌아보게 하고, 정책은 과거의 경험을 통해 미래의 경로를 설계해야 한다. 원작을 존중한다는 것은 작품을 영원히 고정하는 일이 아니다. 정책의 연속성을 지킨다는 것도 기존 제도를 영원히 유지하는 일이 아니다.



바꾸어야 할 것은 바꾸되, 지켜야 할 맥락과 원칙은 지키는 것. 『새의 선물』 개정판을 둘러싼 문학적 질문이 한국 신약개발 정책에 던지는 의미도 바로 여기에 있다.